
처음 네덜란드어를 배울 때 가장 혼란스러웠던 건 문법보다 단어의 뉘앙스였다. 분명히 사전에서 ‘zien’은 ‘보다’라고 되어 있었는데, 막상 현지 친구들이 쓰는 문장은 사전 속 그 단어가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르게 느껴졌다.
예를 들어, “We zullen wel zien.”은 직역하면 “우리가 보게 될 거야” 정도겠지만, 실제로는 “두고 보자”, “그때 가서 봐야지” 같은 뉘앙스가 숨어 있다. 그런 식으로 단어 하나에 맥락이 실리면서, 단순한 번역 이상의 감각이 필요하다는 걸 점점 깨달았다.
한국어를 가르칠 때도 마찬가지였다. 네덜란드 학생이 “배고파요”는 알지만 “허기지다”는 모르는 걸 보며, 언어는 ‘뜻’보다 ‘상황’을 먼저 익혀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. 단어의 뜻을 알고 있어도, 그걸 언제 어떻게 쓰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니까.
그래서 수업을 할 때도 문장 단위로 접근하려고 노력한다. “het regent” 하나를 배워도, 비가 와서 우산을 써야 한다든지, 기분이 가라앉았다든지, 맥락을 함께 얘기해야 그 문장이 살아난다. 학습자 입장에서는 단어보다 ‘장면’이 머릿속에 더 오래 남는다.
리어레런(Leer-Leren)을 만들게 된 것도, 그런 이유 때문이다.
두 언어 사이에서 헷갈리기 쉬운 표현들을 더 자연스럽게 연결하고, 실제 상황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게 하려면 ‘감각’을 공유하는 방식의 자료가 필요했다.
언어는 결국 도구다. 시험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,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을 만드는 거라면, 그 안에 담긴 말투, 분위기, 말할 때의 리듬까지 느낄 수 있어야 한다.
“왜 이럴 땐 이 단어를 쓰지 않아요?”
“한국어로는 다 ‘보다’인데, 왜 다르게 써요?”
그 질문들에 답하면서, 나도 언어를 다시 배우게 된다.
그리고 그게 이 일이 오래 해도 지루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.